붓을 따라 펼쳐지는 기품과 향기,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지닌 서예에는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깊이가 은은하게 비친다. 모든 것이 더 빨라야 하는 현대 사회에서, 천천히 쌓여가는 시간이 빛을 발하는 아름다운 예술 서예. 서예가 경산(鏡山) 김시현 작가를 통해 보이지 않는 마음을 보이는 것으로 표현하는 그 신비로운 세계와 만났다.
안고수비(眼高手卑)를 극복하며 명실상부(名實相符)를 향해
안동의 유가 집안에서 자란 김시현 작가는 붓글씨를 쓰는 일이 낯설지 않았다. 그렇게 붓과 친해졌고 대학 1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대장암과 혈액암으로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서예가 있어 힘을 낼 수 있었다. 그 시간은 작품의 깊이로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병으로 고생을 했지만 모든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제 와 보니 손해 본 것이 없어요. 득 본 것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머리로 이해한 것을 가슴으로 느끼게 되었으니까요.”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예 부문 초대작가인 김시현 작가는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과 한국미술협회 서예분과 이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대구미술협회 서예분과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안고수비(眼高手卑)라고 하지요. 눈은 높은데 손이 못 따르는 것이 고민입니다. 유명무실(有名無實)이 아닌 명실상부(名實相符)한 작가가 되려고 노력 중입니다.”
가물 현(玄)으로 표현하는 깊이
흔히들 글씨는 소년 천재가 없다고 한다. 즉, 글씨는 재능보다는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의미다. 그 노력은 모든 단계에서 필요하다. 일례로, 김 작가는 편리한 먹물 대신 먹을 갈아서 사용한다. 그렇게 해야 입자가 고와지고 먹색이 깨끗하기 때문이다. 결국엔 먹물이 작품의 수준을 한 단계 올리는 역할을 하게 된다. “먹색은 현(玄) 해야 합니다. 같은 검은색이라도 흑(黑)과 현(玄)은 다릅니다. 똑같은 글씨를 쓰면서도 현(玄)한 먹색을 표현하는 것이 관건이지요. 현(玄)은 가물가물한 것입니다. 깊은 바다, 밤하늘을 떠올리면 비슷할 겁니다.”
글씨로 소통하며 마음의 위로를 전하다
스승은 “글씨는 재주로 쓰는 것이 아니라 깨우침이다.”라고 전했다. 수양으로 경지가 올라가며 기법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는 그가 스승이 되어 후학양성에 힘쓰고 있다. 김시현 작가는 제자에게 맞는 가르침을 전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글씨를 보면 성격이 보입니다. 너무 급하고 붕 떠 있는 사람은 차분해지는 글씨를 가르칩니다. 너무 가라앉은 사람은 좀 더 활기가 넘치는 글씨를 쓰게 하고요.” 김시현 작가가 전하는 것은 글씨를 쓰는 방법이자 마음을 다스리는 법인 셈이다.
“소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대에 따라 철학도 사상도 변화합니다. 바뀐 시대에 맞게 나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는 공부하는 후학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에서 한시 100수를 담은 서예집 출간을 앞두고 있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가치는 다릅니다. 각자가 추구하는 바를 해나가다 보면 유종의 미가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김시현 작가가 전하는 희망이 그의 작품처럼 아름다운 울림으로 모두에게 전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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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작성일: 2018. 1. 5
박소연 기자
maybe_s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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